[김웅식의 正論직구]목적을 알 수 없는 강릉의 ‘박신-홍장 조형물’

운영자 0 875 2018.03.19 13:29
강릉시, 2013년도에 2억5000만원 들여 경포호 산책길에 설치
일부다처 남성 중심의 폐습 반영된 설화 맹목적 수용, 조형물 제작
다산 정약용, 목민심서에서 ‘박신은 허황하고 혼미한 사람’으로 질책


▲ 강릉시가 2013년 2억5천만원을 들여 경포호 산책길에 설치한 박신-홍장 이야기 조형물. ⓒ인터넷커뮤니티

봄이다. 강릉 경포호 산책길에 꽃들이 앞 다퉈 피어날 것이다. 경포호 벚꽃 축제는 전국적으로 유명해 곧 상춘객(賞春客)이 몰려올 것이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살아 돌아온다면 목민심서 내용을 바꾸려 할지도 모르겠다. 강릉시 때문이다. 강릉시 공무원을 질타하는 내용을 넣지 않을까 싶다.

본격적인 상춘에 앞서 문제 하나 풀고 가자.

문제) 강릉시는 경포호 산책길에 안찰사 박신과 기생 홍장의 사랑 이야기(설화)를 바탕으로 조형물을 2013년 2억5000만원을 들여 설치했는데, 그 목적이 뭐라고 생각하나. ( )

주관식이라 문제가 어렵다. 그럼 포털에 올라온 내용을 참고하면서, 객관식 문제를 다시 풀어보자.(참고자료:https://blog.naver.com/boronda12/220595131990)

문제) 강릉시는 경포호 산책길에 안찰사 박신과 기생 홍장의 사랑 이야기(설화)를 바탕으로 조형물을 2013년 2억5000만원을 들여 설치했는데, 그 목적이 뭐라고 생각하나. ( )

1) 홍장과 박신의 사랑 이야기가 애틋하고 기릴 만하다

2) 강릉의 자랑거리이기에 널리 알려야 한다

3) 옛 문헌에 나오니 가치 있는 내용이다

4) 박신-홍장 “우리 이대로 사랑하게 해줘요”

5) 그냥 아무 생각이 없다

*정답은 뒤에서 공개된다.


▲ 박신과 홍장 조형물의 안내문. 강릉부사 조운흘이 박신의 친구로 잘못 기재돼 있다. ⓒ인터넷커뮤니티

조형물은 통상 제작이나 전시 목적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박신-홍장 조형물 제작·전시는 그 목적을 모르겠다.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해학적이라고 안내하고 있는데, 어불성설로 내용이 유치하기 짝이 없다. 조형물 안내문을 읽고 나면 당황스럽다. 이 조형물을 보고 뭐 어쩌란 말인가? 21세기 어법으로 말한다면 ‘서울에서 파견 나간 공무원이 파견 근무지에서 유명 여성에게 빠져 애정행각을 벌였다’는 내용인 것을….

강릉시에서는 옛 문헌에 나오는 설화(전설)를 바탕으로 제작한 거라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문헌을 상고(詳考)하지 않은 게 틀림없다. 지난 시기 일부다처 남성 중심의 폐습이 반영된 설화를 맹목적으로 수용해 조형물을 만든 것이다.

사실 박신(1362~1444)은 여말 선초 정치가로 실존했던 인물이다. 정몽주 문하생으로 23세 때 과거 급제하며 이후 조선 개국공신이 된다. 1418년 세종 때 이조 판서가 되고, 선공감 제조로 있을 때는 선공감 관리의 비리에 연루돼 유배를 가기도 한다. 강릉안찰사 부임 시기는 1393년(31세)이며, 이후 기생 홍장을 한양으로 데려와 소실(첩)로 삼는다. 강릉부사 조운흘(1332~1404)은 박신보다 30세 연상으로 친구는 아니다. 조형물 안내문이 잘못돼 있다.

설화를 수집 채록한 사람들은 거개가 한학을 공부한 사대부들이었다. 설화는 실제 체험에서 발생한 것이라도 전승과정에서 채록자의 의식이 가미되고 윤색되게 마련이다. 남성 주인공 박신의 여성 편력을 보여주는 이 설화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해학적이라고 하는데,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천민 신분인 관기 홍장의 입장에서는 안찰사 박신과의 사랑이 관기 생활을 벗어날 수도 있는 하나의 선택지로 작용한다. 하지만 신분제라는 단단한 벽(권력)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강릉부사 조운흘의 ‘장난질’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 안찰사 박신과 강릉부사 조운흘을 질책하고 있는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내용. ⓒ창작과비평사 내용

목민심서(1818년)는 잘 아는 바와 같이 목민관, 즉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책이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박신과 홍장의 사랑 이야기를 꺼내고 나서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고 있는데, 안찰사 박신과 강릉부사 조운흘을 ‘몸가짐을 제대로 하지 못한 수령’으로 질책하고 있다.

‘생각컨대 박 안찰사는 물론 허황하고 혼미한 사람이요, 조공(趙公)도 꾸며서 상관을 놀려준 것은 역시 잘못이다. 내가 서읍에 있을 때에 이와 같은 일을 만났는데, 기생으로 하여금 앓아누운 체해 모시고 놀지 못하게 하고, 놀이가 파하자 사실대로 말하니, 감사도 역시 사과할 뿐 나에게 노여워하지 않았다.’(목민심서1권 99쪽/창작과비평사)

강릉시는 2013년 5월에 박신과 홍장의 이야기 조형물을 거액을 들여 경포호 산책길에 왜 설치했을까? 공무로 파견 나간 근무지에서 유명 여성과 애정행각을 벌이는 수령의 이야기를 제작해 버젓이 전시해 놓은 이유는 뭘까. 조선시대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아니, 오늘 경포호 산책길에 조형물로 되살아나 있지 않은가. 다산이 이런 모습을 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 앞선 문제의 답은 ‘5) 그냥 아무 생각이 없다.’

강릉시 관계자는 “2013년 시에서 계획을 수립하고 입찰에 부쳐 사업비 2억5000만원으로 조형물을 설치했다”며 “이 조형물이 특별히 문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강릉 경포호에서

[출처: 시사오늘, 시사ON/ 김웅식 기자]
운영자 0 875 2018.03.1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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