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명 주름 속 전쟁의 상처…"일본군 성노예는 아시아 인권 문제"

최고관리자1 0 13 2022.08.11 09:01
인터뷰-안세홍 사진작가일본군 성착취 피해자들 촬영25∼28일 나고야서 49점 공개5급 장애에도 아시아 전역 취재25년간 140여명 카메라에 담아"공공기록물화 목표 증언 수집당사자 넘어 2차 피해도 주목한일 아닌 전 아시아 인권문제"



▲ 안세홍 사진작가"표정에 그분의 인생이 드러나는 것이니까요. 그 표정 속에서 인생을 담으려고 했죠."안세홍은 사진작가다. 하지만 그가 처음 사람을 만나 하는 일은 카메라를 꺼내지 않는 일이다. 그 대신 이야기를 듣는다. 길게는 2∼3일, 짧게는 2시간씩 방문한다. 만나는 이들은 대부분 80∼90세. 그들의 미간과 눈가 주변 주름이 잔뜩 웅크려지면 어릴 적 고통스러웠던 학대의 흔적도 드러난다. 그 결을 담은 얼굴을 향해 안세홍 작가는 셔터를 누른다. 카메라를 꺼내드는 순간은 헤어지기 전 10∼20분 사이뿐이다. 주름만큼이나 깊고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 노인들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 일명 '위안부'라 칭해지던 이들이다.안세홍 작가는 무려 25년간 한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 동남아 등 아시아 전역을 돌며 140명의 피해여성을 찾아 인터뷰하고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해왔다. 그의 작품이 전시되는 '표현의 부자유전'이 최근 일본에서 다시 개막했다. 안 작가의 사진과 춘천 출신 김운성·김서경 조각가 부부의 평화의 소녀상을 비롯해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저지른 인권 유린의 참상을 다루는 사진·영상·그림 등으로 구성된 전시다. 광복절 77주년을 앞두고 안 작가의 여정을 전화 인터뷰로 들었다.



▲ 동티모르 사므 알리스 (1929년생·최근 연락 끊겨 사망추정)씨와 인터뷰 하는 안 작가.■ 나고야서 작품 49점 대거 공개'표현의 부자유전'은 일본 도시 곳곳을 순회하는데 특히 오는 25∼28일 열리는 나고야 전은 안 작가에게 의미가 크다. 다른 전시에서 작품 1점씩만 공개했으나 나고야에서는 총 49점이 걸리기 때문이다. 안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일본시민들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의지 덕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2012년 시작된 이 전시는 '지워진 것들'을 되살리고자 하는 일본 시민들의 염원으로 지난 4월 도쿄 이후 지난 6~7일 교토에서 재개됐다. 말하지 못한 것들, 누군가의 사회적 명예와 국제적 위상을 이유로 드러나지 못한 것들을 사진과 영상, 회화 등으로 꺼낸다. 지난 10년간 줄곧 우익단체의 시위와 폭력, 일본의 통제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전하는 작품은 법적 대응까지 해야 했다.그러나 최근 일본 시민사회에서는 세대를 불문하고 자유를 지켜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외부 검열 등으로 전시를 못 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나고야의 경우 지난해 전시 개최 전 폭죽으로 의심되는 물건이 배달되는 등 극우단체의 위협으로 취소된 뒤 재개되는 곳이기도 하다. 10년간 이곳을 중심으로 전시를 해온 안 작가는 "공공장소의 공적 역할이 부각되면서 교토와 나고야 시민들이 나서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며 "사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도 있지만 일본 내 조선인 차별, 후쿠시마 원전 피폭 등의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시민 사회의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울어진 표현의 운동장… 희생자 대부분 별세안세홍 작가의 사진들은 늘 저격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가 해온 일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찾아 그들의 얼굴을 그대로 담은 것 뿐이었다. 왜곡된 곳은 오히려 피해자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었다. 일본 극우정치인들은 피해사실이 진짜가 아니라며 역사를 아직도 부인하고 있다. 표현의 운동장은 아직 기울어져 있다. 안 작가가 만난 피해여성들은 힘 없는 노인이자 여성,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로 피해를 알릴 힘도 들어줄 사람도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아시아 국가 중 오지에 사는 여성도 많았다. 안 작가는 중국 산시성, 광시 좡족 자치구, 동티모르,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피해여성들을 만났다. 나고야 전시 '우리들의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는 이들 중 49명의 얼굴이 공개된다. 그가 이틀간 함께 먹고 자며, 혹은 두세번씩 찾아가 일본군에 의한 성착취 피해를 이야기해준 이들이다.안 작가가 촬영한 여성 중 많은 이들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도우(1926-2016) 씨는 동티모르 틸로마르 지역에서 살았다. 태평양 전쟁 당시 그의 동생 마르티나 씨도 피해를 겪었다. 안 작가가 그를 만나러 갔을 당시는 치매를 앓고 있어 대화조차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일본군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얼굴이 일그러졌다. 안 작가는 "기억이 가물가물해도 가슴 속에 남아있는 트라우마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했다.평안남도에서 태어난 이수단(1922-2016) 씨는 양로원에서 생을 마쳤다. 5년간 러시아와 중국 접경지역에서 피해 당한 후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중국남성과 '첩'의 신분으로 결혼했지만 가정폭력을 당했고, 아이도 낳지 못했다. 안 작가와 만났을 당시 이 씨는 정신분열을 앓고 있었다. 우리나라 말은 하지 못했고, 양로원 원장이 준 아기인형을 자신의 아이인 듯 대했다고 한다. 아기를 가지지 못한 한 때문이었다. 성착취 피해로 뒤틀린 그는 가족없이 홀로 생을 마감했다. 안 작가는 "피해 후 아이를 갖지 못할 정도로 자궁이 망가졌다고 했다"고 말했다. 안 작가가 만난 조선인 13명 가운데 80%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안 작가가 만난 조선인들은 모두 별세했다. 대부분 그의 방문 얼마 뒤의 일이었다.



▲ 동티모르 카르민다 도우(1926-2016) 씨는 3년간 일본군에게 성노역 피해를 겪었다.■세대 넘어서는 전쟁의 상흔안 작가가 나고야전에서 공개하는 작품에는 49명의 피해자의 얼굴이 담긴다. 21명의 피해자의 인터뷰를 담은 저서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보다 많다. 한국인 4명을 비롯해 △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10명 △중국인 9명 △필리핀인 7명 △인도네시아인 10명 △동티모르인 9명이다. 안 작가는 "책에도 140분의 얼굴을 모두 넣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아시아 전역에서 일어난 피해라는 사실을 더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비단 한일간 문제가 아닌 아시아 전역의 인권문제로 바라봐야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피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증언을 남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 작가는 국가 차원의 공공기록물로 남기기 위해 성노예 피해자 대상 구술채록 작업을 여성가족부에 꾸준히 제의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아시아 전체를 기록해야 한다는 말에 "다른 나라 것을 왜 기록하느냐"는 답변만 돌아왔다."처음에는 우리나라부터 돌아봤는데 해외 전시 등을 가보니 한일간 역사 갈등으로만 보는 거예요. 한국와 일본은 왜 싸우기만하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고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지역은 한국과 중국 뿐 아니라 아시아 태평양 연안 2∼30곳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잘 들어본 적이 없잖아요. 그래서 조사하다 보니 기록이 없었습니다. 아시아 문제 전반을 기록하면서 한일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인권문제로 풀어나가야만 해결 지점을 찾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전쟁 속 피해 여성의 상흔은 세대를 넘어 이어진다. 안 작가가 2차 피해를 겪는 당사자와 가족으로 취재를 확장하려는 이유다. 피해자를 만나면서 피해 당사자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안 작가는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에서는 현지 마을에서 2차 가해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군의 성착취로 인해 아이를 출산하면 아이는 '일본군 아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성장한다. 그래서 지역사회에서 따돌림을 받는 사례도 매우 많았다. 종교 문제로 피해사실을 아예 숨겨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안 작가는 "인도네시아에서 피해 할머니를 만나려고 했으나 이슬람교도 아들이 숨겨야 한다고 제재했다"며 "가족 안에서조차 사회적 지위나 명예 때문에 피해자가 사실을 숨기도록 요구받는다"고 했다. 세대를 넘어 잔존하는 현재의 문제인 셈이다.그는 "일본도 우리나라도 양국 갈등이나 민족적인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도 명확히 설명했다.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평화를 위한 공공기록물로서 남겨야 하죠. 동남아 일부 국가의 경우 일본의 지원을 받아 이런 성노예 문제를 쉬쉬하고 있어요. 현재 한류 문화를 이끌고 있고 아시아에서 역할이 큰 한국이 더 나서야죠. 더 늦어지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 중국 헤이룽장 이수단(1922-2016·평남 출신) 씨는 하얼빈으로 강제 이주돼 피해 입었다.■장애·빚 불구 공공기록물 의지더 늦기 전에 피해 증언을 남겨 공공기록물로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다. 코로나19 이후 3년여간 대면 인터뷰는 거의 중지됐다. 코로나 이후 연락을 주고 받던 피해자가 세상을 떠난 경우도 있다. 사진 작업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의 증언과 이야기를 영상으로 온전히 담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나중에 증거능력까지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수민족 언어지원 등이 없어 이중통역 등 증언 녹취를 푸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로젝트 경비 역시 안세홍 작가가 운영하는 서울시 등록 공익단체 '겹겹프로젝트'를 통해 마련한다. 빚도 수억이다. 그는 "경비나 장비, 인력 등의 비용은 후원금으로 충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빚을 졌는데 인권단체가 급여를 체불해서는 안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안세홍 작가는 다리가 불편한 5급 장애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천천히 그리고 깊게 세상의 불편을 볼 수 있었다. 최근 인기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에서 조명하듯 장애인들의 전문직 수행 등을 놀랍게 볼 이유가 없다."세상을 천편일률적으로 바라보지 않아야죠. 특히 장애가 있다보니 인터뷰를 다니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빨리는 못 가지만 천천히는 갈 수 있거든요. 천천히 가는 것 자체가 더 나을 때도 있죠.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고, 더 깊이 볼 수도 있으니까요. 장애가 없는 분들은 더 빠르게 일처리를 하겠지만 장애인들은 다만 느릴뿐이고 조금의 도움이 필요할 뿐이죠. 사실 모든 것들 다 할 수 있거든요. 그런 환경이 제공되어야겠죠. 그렇다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충분히 사진가도, 예술가도, 변호사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진행·정리/강주영안세홍 작가 = △강릉 옥계 △강원대 물리학과 졸업 △학보사 활동 후 1996년 잡지 '사회평론 길' 기자생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기록 위한 '겹겹 프로젝트'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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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URL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654/0000017223?sid=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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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1 0 13 2022.08.1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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