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현장학습에 대한 걱정과 기대

강릉플랫 0 1,214 2017.10.31 07:18
가을은 답사의 계절이다. 우리 학과도 오는 11월 학생들을 데리고 강원도 강릉으로 현장 학습을 다녀오기로 예정되어 있다. 목적지는 강릉 경포 인근에 자리잡고 있는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이다.

강릉은 허균, 허난설헌 남매의 외가가 있던 곳이다. 많은 문화재 안내 책자나 관련 자료들이 이 강릉의 외가를 허씨 남매의 생가로 소개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허균, 허난설헌의 아버지는 문장으로 이름난 허엽(許曄)이란 분이다. 허엽은 부인이 둘이었는데, 첫째 부인은 청주한씨이며 둘째부인은 강릉김씨였다. 바로 이 둘째 부인인 강릉김씨가 허씨 남매의 어머니이다. 강릉김씨의 아버지는 김광철(金光轍)이란 분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서울에서 벼슬살이를 하다가 서울의 명문인 양천허씨 허엽 가문과 사돈을 맺었던 것이다.

허씨 남매는 서울 건천동(乾川洞)의 서울집에서 태어났다. 옛날의 행세 꽤나 하던 양반 집안은 다들 벼슬살이를 위해 서울 도성안에 집을 갖고 있었다. 이 서울집을 옛날말로 ‘경저’라고 한다. 경저가 벼슬살이를 위한 집이라면 ‘별서’는 휴식을 위한 집이다. 별서는 서울에서 가까운 곳 즉, 오늘날의 경기도 지역에 두었다. 경저와 별서 외에도 또 하나의 집이 있었으니, 시골집 즉 ‘향제’였다. 시골집은 서울의 벼슬살이를 위한 경제적 잉여를 제공하는 기능을 하였다. 양천허씨 사람들은 한강과 임진강 인근에 별서 겸 향제를 두고 경저와 별서를 왕래하면서 생활하였다.

허난설헌은 1563년에 태어나 27세로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그녀는 17세에 서울의 안동김씨 집안으로 출가하였다. 그녀의 남편은 김성립(金誠立)이라는 사람이었다. 흔히들 허난설헌의 시어머니가 그녀에게 지독하게 시집살이를 시킨데다, 그녀의 남편마저 주색잡기에 빠져 난설헌의 가슴을 멍들게 했고, 결국 그 때문에 그녀가 불행하게 일찍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아무 근거가 없는 속설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조선시대의 여러 지식인들이 허난설헌과 관련하여 전해지고 있는 이런 저런 말들이 낭설에 지나지 않음을 충분히 논증하였다.

이 즈음해서 한 두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대체 허균, 허난설헌과 강릉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강릉은 무슨 근거로 허균, 허난설헌을 자기 고장을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로 기리고 있는 것일까? 허난설헌 문학제와 같은 지역축제는 무엇을 근거로 강릉시에서 주최하는 것일까?

허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잠시 서울집을 떠나 강릉 외갓집으로 피난을 하였다. 내가 알고 있는 한 허균이 강릉을 방문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때 강릉에서의 허균의 행적은 특별히 알려진 것이 없다. 말하자면 강릉에서 허균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난설헌도 마찬가지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체험하고 무엇을 느끼기 위해 학생들을 이끌고 먼 길을 찾아가는 것일까?

우리의 답사 버스는 돌아오는 길에 용인 처인구에 자리잡고 있는 허균의 묘를 들를 예정이다. 허균은 반역죄인으로 처형을 당하였다. 그래서 그의 시신이 묻힌 무덤에는 비석은 있으나 이름자를 새긴 비문이 없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역사의 현장에서 허균이 쓴 〈호민론〉이라는 글을 우리 학생들에게 읽어주고 싶다.

허균은 1614~15년에 걸쳐 중국 북경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4,000여 권의 책을 구입해서 들여왔는데, 그 중 하나가 명나라 사상사의 걸출한 인물인 이탁오의 《분서》라는 책이었다. 허균은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감회를 시로 남기기도 하였다. 나는 우리 학생들에게 이 책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싶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 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의 책을 읽었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공자를 존경했지만 공자에게 어떤 존경할 만한 점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야말로 광대들의 연극판을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잘한다고 소리치면 따라서 잘한다고 소리 지르는 격이었다.

김창원 경기대 교수

[출처 : 중부일보 / 김창원 경기대 교수]
강릉플랫 0 1,214 2017.10.31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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