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민 칼럼]강릉의 문화 세계인의 감동으로 남길

강릉플랫 0 1,398 2017.11.27 07:42
문학으로 연을 맺은 친구가 왔다.서둘러 텃밭에서 솎은 푸성귀로 아침을 버무려 먹고 우리는 허난설헌 생가터를 찾기로 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안내소에 꽂힌 책자를 꺼내는 소리에 안내도우미가 창문을 열었다. 들꽃 같은 미소를 머금고 걸어 나오는 그는 문화재를 소개하는 자원봉사자라 했다. 조림목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목백합나무 그늘에서 그는 난설헌의 시 `죽지사' 한 수를 읊어주었다. `나의 집은 강릉 땅 돌 쌓인 갯가로 / 문 앞의 강물에 비단옷을 빨았어요. / 아침이면 한가롭게 목란배 매어 놓고 / 짝지어 나는 원앙새만 부럽게 보았어요.' 잠시 시에 젖어 눈을 감았다. 까마득한 시간 속으로 떠난 경포호수에는 달빛이 가득 고여 있었고, 난설헌은 그 달빛으로 비단옷을 헹구고 있었다. 지금은 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가 세워져 있지만 그 당시에는 호수였다고 한다.

8세 때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어 신동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천부적인 재주를 지닌 난설헌은 우리나라 최초로 한글소설을 지은 허균의 누나이기도 하다. 아버지 허엽과 허성, 허봉, 허난설헌, 허균을 세상 사람들은 허씨 5문장가로 불렀다. 난설헌의 시는 후에 허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에게 보여 `난설헌 집'이 발간되는 계기가 됐으며, 중국은 물론 일본에서까지 격찬을 받아 당대의 국제적인 여류시인으로 명성을 떨치게 됐다고 전해진다. 15세에 결혼, 어린 두 남매를 잃고 27세에 복중의 아이와 함께 생을 마감한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울컥한다. 내외담을 지나 안채에 모셔진 난설헌의 영정 뒤에서 고개를 숙인 봉선화 꽃은 붉은 울음을 겹으로 터트리고 있었다. 못다 한 이야기에 매듭을 지어주고 헤어진 안내도우미의 등에 따뜻한 마음이 업혀있는 걸 바라보며 우리는 소나무 숲으로 향했다.

다정한 웃음으로 배웅해주던 그의 친절과 난설헌의 슬픔이 냇둑에서 다시 사운거린다. 친절은 다시 부메랑이 돼 돌아오는 것일까. 며칠 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 가을에 다시 강릉에 온다는 소식이었다. 친절한 마음과 어우러진 문화재가 주는 감동은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다는 걸 다시 깨닫게 해줬다. 2018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예향 강릉의 모습은 보이는 앞모습보다 속 모습이 더 아름다워 세계인의 가슴에 주는 감동으로 우뚝 섰으면 좋겠다.

[출처 : 강원일보 / 양경모 시인]
강릉플랫 0 1,398 2017.11.27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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