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에 대한 작심 비판을 쏟아내자, 지도부 체제 전환으로 전열을 가다듬던 당이 몸살을 앓고 있다.
13일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후 36일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대표는 국회에서 62분간의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당 비대위 체제 전환에 대해 “반민주적” “위인설법” “집단린치”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한 그는 현 여권의 위기 뒤에 ‘윤핵관’의 책임이 있다고 직격탄을 퍼부었다.
그는 권성동 원내대표와 장제원·이철규 의원을 ‘윤핵관’, 정진석 국회부의장과 김정재·박수영 의원을 ‘윤핵관 호소인’으로 각각 지칭하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또 윤핵관 그룹이 “당 우세 지역구에서 재공천 받는 세상을 이상향으로 두고 있다”며 2024년 총선 승리를 위해 험지 출마를 요구했다. 장제원(부산 사상)·박수영(부산 남구)·김정재(포항) 의원의 지역구인 영남 지역이나 권성동 원내대표(강릉)·이철규(동해-태백-삼척-정선) 의원이 당선된 강원 지역은 전통적으로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윤 대통령에 대해서도 “나를 ‘이 XX 저 XX’ 하는 사람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과 저의 문제는 상당 부분 오해에서 기인했다”고 부연했다. “중간 전달자들이 사심 가득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또 “돌이켜 보면 양의 머리를 흔들면서 개고기를 가장 열심히 팔았고 가장 잘 팔았던 사람은 바로 저였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 “당대표였던 분의 입에서 자당 대통령 후보를 개고기에 빗대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될 망언이다”(김미애 의원), “저는 개고기를 판 적도 없고 양의 얼굴 탈을 쓰지도 않았다”(김기현 의원)고 반박하며 이른바 ‘양두구육’ 논란이 벌어졌다.
이 대표의 작심 발언에 당 안팎이 크게 술렁대는 분위기다. 그간 이 대표가 “익명에 숨어 당내 분란을 일으킨다”고 공공연하게 말해왔던 윤핵관 그룹의 이름을 전격 공개하고,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며 조롱하는 투의 ‘호소인’이라는 단어를 붙이자 “지나쳐도 너무 많이 지나쳤다”(나경원 전 의원)는 비판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향해 “배은망덕 하다”(우상호 비대위원장)며 갈라치기에 나섰다.
이 대표에게 윤핵관 그룹으로 지목된 한 의원은 “이 대표는 혐의가 명확하다. 다 사법 처리 되면 끝나는 일”이라고 했다. 이미 이 대표에게 징계가 내려진 순간 이 대표의 정치적 생명은 끝났으므로 이 대표의 여론전이나 가처분 신청에도 과도하게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 대표가 “온라인 당원 소통 공간을 만들고 당의 혁신 방안에 대한 책을 쓰겠다”며 장기전을 예고한만큼 당내 여진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 대표는 13일 회견을 마친 후 저녁에도 페이스북에 “우리는 당원이 돼 미래를 준비하자”며 당원 가입을 유도하는 글을 썼다.
14일에는 자신을 공개 비판한 이철규·김미애 의원을 향해 “뭐에 씌인 건지 모르겠다”며 맞받아 치는 글을 올렸다. 이어 “내일(15일)부터 라디오에서 우선 뵙겠다”며 본격적인 여론전도 예고했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앞으로 매일 (라디오) 한 개씩 출연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유승민 전 의원과 손을 잡을 가능성도 여전히 거론된다. 이와 관련해 이 대표는 9일 페이스북을 통해 “신당 창당 안 합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이탈했던 개혁보수가 끝내 독자생존하지 못하고 소멸한 전례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13일 회견때 이 대표는 유 전 의원과의 연대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유 전 의원도, 저도 상당한 지지세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여운을 남겼다.
향후 이 대표와 친윤 그룹의 대립 구도는 이 대표가 법원에 낸 당 비대위 전환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의 인용 여부에 따라 또 한 번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서울 남부지방법원은 17일 오후 3시에 가처분 신청 심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날은 윤 대통령의 취임 100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