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극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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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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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설악산국립공원이 출입금지구역 내 안내판에 추락사한 등산객의 시신 사진을 적나라하게 썼다가 논란이 일자 안내판을 바꾸는 해프닝이 있었다. 토왕성폭포 인근 산길에 '잠깐, 이래도 가셔야겠습니까'라는 경고 문구와 함께 추락사 현장 사진 2장을 그대로 게시한 것이다. 팔다리가 꺾이고, 주변에 피가 흥건한 참혹한 시신의 모습이 모자이크 없이 사용되자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했다.

"유족의 동의는 구한 것이냐", "수위를 넘어선 사진이다" 등의 비판적 반응과 함께 "오죽 말을 안 들으면 저렇게까지 하겠냐",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극약처방을 한 것이다. 설악산 측이 강단 있게 일 잘했네" 등의 옹호 반응도 이어졌다.

국립공원 측은 매년 불법 산행으로 인한 사망·부상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어 경각심을 고취하고자 사고 사진을 넣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2022년까지 최근 5년간 설악산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만 모두 25건으로,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출입이 금지된 곳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시신 사진으로 논란이 된 안내판 또한 출입금지 차단시설 안쪽이어서 허가자 외 일반 탐방객은 접할 수 없는 위치라는 해명도 덧붙였다.

결국 국립공원 측에서 안내판을 교체하는 것으로 논란은 막을 내렸지만, 설악산 시신 사진 논란은 경고와 자극에 둔감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라는 점에서 씁쓸하다. 졸음운전을 예방하자는 고속도로 안내문에도 '제발 쉬어가세요'라는 애교가 통하지 않자, 이제는 '깜박 졸음, 번쩍 저승', '졸면 죽음' 등 전쟁터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섬뜩한 돌직구성 경고가 출현하게 됐고, 영화와 드라마는 핏빛 폭력에 막장 스토리가 나날이 더해지고 있다. 말로 먹고사는 정치인들의 언어와 그들이 거리에 내거는 현수막은 '19금'으로 처리해야 할 만큼 살벌하고 민망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약물 중독자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주는 '하드 드러그'를 찾는 격이라고나 할까. 일찍이 미국의 심리학자 레오 크레스피는 "보상과 체벌이 효과를 내려면 점점 더 강도가 세져야 한다"고 '크레스피 효과'를 설파했는데, 이러다가 시신 사진마저 경고용으로 통하지 않는 초극한 지경에 이르지 않을까 두렵다.

최동열 강릉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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