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가서 먼저 한 일? 스키 리프트 처음 타 봤지”

[2018 평창겨울올림픽] 한국 최초의 스키 국가대표 임경순
1960년 미국 올림픽에 나갔는데
비행기 값 모자라지, 스키 없지
그 쪽 관계자들 없었으면… 어휴

일본군 보며 독학했던 때 생각하면
평창올림픽 열리고 성화도 들고…
후배들 힘내라고 응원하게
스키박물관서 자원봉사할거야


국내 최초의 스키 국가대표 임경순씨가 2018 평창겨울올림픽 개막 100일 앞둔 지난해 11월1일 인천대교에서 열린 성화봉송 행사에 주자로 나선 모습. 평창동계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제공

1950년 2월.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 지르메에서 스키대회가 열렸다.
10년 후 우리나라 최초 올림픽 스키 국가대표가 될 스무살 청년 임경순(88)은 강원도 원주에서 대관령으로 가는 목탄트럭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까지 몇 킬로미터 남겨두고 횡계마을에서 차가 고장나는 바람에 멈춰 섰다. 하는 수 없이 참가 선수들은 무거운 스키 장비를 둘러메고 십리 길을 걸어야 했다. 임씨는 “68년 전 일을 떠올리면 평창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기쁨과 감격스러움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벅찬 소감을 밝혔다.

임씨는 일제강점기 중국 만주지역의 통화(현 중국 길림성 통화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1학년 겨울, 일본군이 스키를 타고 얼어붙은 강을 건너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던 소년은 아버지를 졸라 스키를 갖게 됐다. “그 당시 통화의 남산스키장에서 일본인들이 스키 타는 걸 보며 독학으로 배웠죠.”
1945년 해방 직전 서둘러 서울에 내려왔을 땐 스키를 살 수도, 구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의 아는 사람을 통해 에지(스키 바닥 양쪽 옆면으로 브레이크 구실을 함)가 모두 닳아버린 벚나무 스키 한 벌을 겨우 구했다. “스키가 얼음판에서 계속 찍찍 미끄러졌어요. 멈추려면 몸에 힘을 줘야 하니 자세가 다 망가졌죠.” 하지만 스키에 대한 임씨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임씨는 낡아빠진 스키를 신고 1948년 서울 아차산에서 열린 제2회 전국스키선수권대회 중학부 활강·회전·신복합 경기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1957년 대한스키협회가 국제스키연맹(FIS)에 가입하면서 한국의 올림픽 출전 길이 열렸다. 군 생활을 마치고 뒤늦게 대학에 입학한 임씨도 소식을 접했다. “당시 우리와 외국 선수들의 수준을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호기심과 의욕으로 출전을 결심했죠.” 임씨는 1960년 미국 스쿼밸리 겨울올림픽 알파인 종목 출전 기회를 잡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스키종목 올림픽 참가였다.

하지만 올림픽으로 가는 길은 녹록지 않았다. “경유지인 일본에서 스키와 장비를 사려고 했는데, 당시 일본과 국교 정상화 전이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에이디(AD)카드로도 입국이 안 됐어요.” 결국 그는 공항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일본에서 곧바로 미국행 비행기를 갈아탔다. “당시 최신 점보기였는데 너무 비싸 우리나라 이름으로 빚을 지고 탔죠.”
한국에서 온 선수가 스키가 없다는 사연은 개최국인 미국 관계자들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미국 대표팀의 총감독은 이 대회에서 신상품 홍보를 하던 케슬러사의 스키 두 벌을 임씨에게 지원했다. “그때 그 스키는 지금 가격으로 300만원 정도였다”며 “총감독은 ‘리틀 박사’로 불렸는데 그에 대한 고마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임씨의 스쿼밸리 대회 성적은 활강 61위(70명 출전), 회전 40위였다. “현지에 도착해 한국에선 본 적도 없는 리프트 타는 법부터 연습해야 했어요. 활강은 결승점 200m 전까지 잘 내려오다 넘어졌는데 다시 일어나 완주를 했죠.”

지난해 11월1일 평창 겨울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뛰기도 했던 임씨는 올림픽 기간 동안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센터의 스키박물관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그는 올림픽에 나가는 후배들에게 “한 달이 채 안 남았지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훈련을 반복한다면 올림픽 무대에서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구순을 눈앞에 뒀지만 여전히 포기를 모르는 ‘올림피언’이었다.

[출처: 한겨례 / 선담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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