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고추 함부로 못 먹는 날 온다

최고관리자1 0 16 2022.10.12 17:35
[표지이야기]2022년 고추농사에 직격탄으로 작용한 가뭄은 더욱 잦아질 전망, 중앙·지방 정부 특별한 대책이나 해법 없어



전북 진안에서 한 농민이 병충해로 말라붙은 고추를 살피고 있다. 류우종 기자하얗게 탈색돼 부패한 고추가 밭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500평 남짓한 고추밭에는 쭈글쭈글하거나 다 자라지 못한 고추가 비쩍 마른 줄기에 매달려 있거나 바닥에 방치돼 있었다. 묵은 고추가 햇고추보다 활발히 거래2022년 9월29일 찾아간 경북 안동시 풍산읍 신양1리 고추밭에서 만난 농민 이기연씨는 “고추농사 30년 중 지금이 가장 안 좋다. 지난해 생산량이 많아서 비슷하게 나올 줄 알았는데, 말라버리기만 했다”고 말했다. 칼라병, 무름병 등의 바이러스에 강하다는 말을 듣고 그는 2022년 고추 종자를 예년보다 4배 이상 비싸게 샀다. 1천 개당 3만원에 사던 종자를 14만원꼴로 산 것이다. “기후변화가 너무 심하니까. 종자도 비료도 이것저것 좋은 거 다 가져다 썼는데 아무리 해도 안 돼.” 이씨가 덧붙였다.고추는 고온에 취약한 작물이다. 기온이 30℃ 이상일 때 고추꽃의 절반이 떨어진다. 땅까지 뜨거워지면 양분 흡수가 어려워져 석회가 결핍된다. 강한 햇볕은 고추를 태워 하얗게 만든다. 세균에 감염된 고추는 부패한 채 떨어진다. 안동시 농업기술센터는 안동에 2022년 6월 중순부터 계속된 30℃ 이상의 고온으로 가뭄이 일어나 석회 결핍과 생리장해가 일어났다고 봤다. 6월 안동시 최고기온이 30℃가 넘는 날은 30일 가운데 16일이었다. 6월21일과 22일은 최고기온이 35.5℃까지 올랐다. 2021년 6월은 30℃ 넘는 날이 6일에 그쳤고 최고기온은 31.1℃였다. “가뭄으로 수확량도 줄고 상품가치가 있는 고추 비율도 감소했어요. 농부들 잘못이기보다는 이상기상 영향이 크죠.” 심영은 안동시 농업기술센터 원예기술 팀장이 말했다.2022년 생산된 고추는 물량이 적을 뿐만 아니라 품질도 나빴다. 한 해 전 고추 작황이 좋았기에 묵은 고추가 햇고추보다 활발히 거래되는 기현상까지 일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고추를 경매로 거래하는 서안동농협에서 만난 이승엽 서안동농협 영농지원센터장은 “올해 수확량이 적어 고추 가격이 오를 거라고 기대했는데 지난해와 비슷하다. 오히려 품질은 지난해보다 떨어진다. (고추 풍년이던) 지난해에 나온 양도 (시장에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주요 농축산물의 수급과 가격 동향 등을 전망하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의 관측보를 보면, 2022년 8월 한국에 수입된 고추는 7214t으로 2021년에 견줘 663t 증가했다. 9월 고추 수입량은 5777t으로 2021년 같은 달(6010t)과 비슷했지만 10월 수입량은 다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국내 수요를 수입물량으로 대체하는 셈이다. 농사를 망친 고추 농가의 시름은 더 깊어진다. 고추보다 양파나 마늘이 더 문제기후변화에 타격을 입는 농산물은 고추뿐만이 아니다. 기후변화 취약작물로 꼽히는 배추와 무는 2022년 여름 생산량이 줄어 가격이 폭등했다. 농업관측센터가 발표한 관측보의 여름배추 생육·생측 결과를 보면, 주산지인 강원도 지역(삼척, 태백, 평창 대관령면, 강릉 왕산면 등)에 2022년 잦은 비와 일조시간 부족으로 생육이 부진했다고 분석했다. 고랭지 생산량은 39만6459t으로 2021년 44만7411t, 평년 42만4840t에 견줘 크게 감소했다. 고랭지 배추 소매 가격은 1년 전보다 1.55배 오른 7756원, 고랭지 무도 2.31배 뛴 1개당 4262원을 기록했다(10월6일 농산물 유통정보). 기후변화로 여름배추와 무를 생산하는 고랭지 산지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고랭지 배추 재배면적은 1996년 1만793㏊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2001년 이후 내리 감소세다. 2022년은 26년 전의 절반가량인 5363㏊ 수준이다. 2022년 고추농사에 직격탄으로 작용한 가뭄은 더욱 잦아질 전망이다.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낸 ‘3차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2021∼2025)’을 보면 “1950년대 이후 가뭄 발생 빈도가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로 특히 2008년 이후 매년 가뭄 발생 피해가 늘고 있다”고 나온다. 가뭄 발생 빈도는 1904∼2000년 매해 0.36회에서 2000∼2015년 매해 0.67회로 1.86배 늘었다. 시간당 30㎜의 집중호우 발생 빈도가 늘면서 국지적 홍수도 늘 전망이다. 한국의 기온은 지난 106년간(1912∼2017년) 약 1.8℃ 상승해 전 지구 연평균 온난화 정도인 0.85℃보다 뚜렷하게 기온 상승 속도가 빠르다.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 현상이므로 농산물 생산이 어렵다고 무조건 수입으로 대체할 수도 없다. 2022년 한국이 가뭄을 겪었듯 중국 남부 양쯔강 유역에는 60년 만에 가장 심한 폭염이 지나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를 보면, 폭염은 양쯔강 수위를 내렸고 농업뿐만 아니라 공장 물 공급과 전력 생산에도 영향을 끼쳤다.“(언젠가) 다른 나라가 식량안보 때문에 수출을 안 하는 상황이 전세계에서 벌어질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커지고 인구도 계속 늘기 때문입니다.” 국승용 농촌경제연구원 미래정책연구실장의 설명이다. 식량안보 문제가 아니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물론 중국의 고추 산지는 신장웨이우얼과 외몽골로 아직 기후변화의 영향은 적은 편이지만 양파나 마늘이 문제죠. 우리 쪽 주산지가 중국 산둥성과 기후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양파나 마늘 수급이 어려워지면 중국도 문제가 생길 확률이 큽니다.” ‘농식품 기후변화 대응센터’는 2025년에나 만든다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이런 문제에 아직 구체적인 해법을 갖고 있지 않다. 안동시 관계자는 “기후변화를 위해 따로 하는 사업은 없다. 새로운 농자재를 지원해줄 수 있지만 관련 보험은 개인적으로 가입한다면 모를까, 거듭해서 이런 상황이면 대책이 나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기후변화 적응 문제를 총괄하는 환경부는 농산물 문제와 관련해 부처 간 의견을 조율하고 주도하기보다 ‘네트워킹’에 집중한다. 환경부 기후탄소정책실 산하 신기후체제대응팀은 전 부처에서 보내온 관련 문제를 취합해 하나의 계획으로 만든다. 김지수 신기후체제대응팀 서기관은 “(지시하거나 요구하기보다는) 산업통상자원부, 농림축산식품부, 보건복지부 등과 저희는 네트워킹하는 것”이라며 “계획과 실행이 잘 돌아가는지, 사각지대가 있는지, (기후변화로)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는지 보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총괄하는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중위)’ 역시 농업 문제엔 관심이 덜하다. 탄중위에서 공정전환분과위원회 간사로 활동 중인 김현권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제20대 국회에서 민주당 농어민 비례대표)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나 대응 과정에서 불평등이 없도록 논의하는데, 전체 산업 분야를 다루다보니 농업만 보진 않는다. 농업 관련 문제는 아직 활발히 논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탄중위 8개 분과위원회에서 활동하는 75명의 분과위원장과 간사 가운데 농촌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이는 김 전 의원과 기후변화 분과위원회 간사 조용성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2명뿐이다. 탄중위 사무처에도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문제를 다루는 기후변화적응팀에 보건복지부, 환경부 직원 2명만 파견됐다. 정부 차원에선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촌진흥청, 산림청 등과 함께 2025년까지 ‘농식품 기후변화 대응센터’를 만든다는 계획이지만, 아직 부처 간 유기적인 협력을 이끌어낼 방안은 요원하다. 기후위기로 나타나는 식량 생산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린피스가 2022년 2월 발간한 ‘기후위기 식량보고서: 사라지는 것들의 초상- 식량 편’에서는 꿀·사과·커피·감자·쌀·고추·콩 등이 기후변화로 생산에 어려움을 겪을 농산물로 꼽혔다. 그 가운데 여름 폭염에 약한 고추는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생산량이 줄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고서는 파키스탄의 경우 전체 고추 생산량의 85%를 차지하는 남부 신드주 쿤리 지역의 생산량이 더위와 홍수로 대폭 줄었다고 분석했다. 2018년 120만5천t이던 고추 생산량은 2019년 70만~80만t으로 40% 줄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스리라차 소스도 기후변화로 인한 생산 감소 문제를 겪고 있다. 미국 <시엔엔>(CNN)은 2022년 6월9일 핫소스 시장 세계 최대 생산업체인 후이퐁이 ‘스리라차가 크게 부족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발표한 성명을 보도했다. 후이퐁은 성명에서 “불행하게도, 전례 없는 제품 부족이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봄 고추의 예상치 못한 흉작 등으로 생긴 (스리라차 소스의 원재료인 할라피뇨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내년에는 좋겠지요, 계속 이러면 다 죽게…”안동에서 대를 이어 고추농사를 지어온 이상근씨는 올해로 고추농사 50년째다. “농사지으면 자연이 짓는 게 90%더라고요. 인간이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개량형 종자도 써봤지만 이번에도 큰 의미가 없었어요. 정부에서 아예 손을 떼버리면 농가가 알아서 해야 해요. 피해보상을 좀 잘해주면 되는데 그런 시스템도 없고요. 농민이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계속 고추농사를 짓겠냐”고 이씨에게 물었다. “이번에 좀 이상했으니까 내년에는 좋겠지요. 계속 이러면 다 죽게….”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그는 고추농사를 계속 지어가겠다고 답했다.



네이버 뉴스
출처 URL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6/0000047138?sid=102


articleCode : 870909be34
최고관리자1 0 16 2022.10.12 17:35

Comments

강릉뉴스 목록

강릉시의회, 신년 참배로 2024년 의정활동 시작
강릉시, 희망찬 제일강릉시대 위해 2024년 시무식 개최
강릉시립미술관, 기획전시 소장품전 ‘컬렉션23’ 재개최
강릉 바다 때린 쓰나미…日 지진 발생 2시간만에 높이 85cm로 왔다
[오늘의 날씨] 한글날 '흐림'…오후부터 전국 곳곳 비 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