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법(法)이 제 기능을 다하는 법

최고관리자1 0 5 2023.08.25 15:01
“이 친구 사정이 딱하니까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여학생 앞에서 음란행위를 하던 남성은 현장에서 붙잡혔지만, 이내 풀려났다. 필자가 고등학교 재학시절 마주친 ‘바바리맨’은 피해자인 나의 선처가 아닌 개인의 사정으로 집에 돌아갔다. 나이가 어렸고 초범인데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범인의 소식은 듣고 싶지 않아도 고스란히 내 귀로 흘러 들어 박혔다. 그는 더 어린 나이의 학생들을 타겟으로 삼아 욕망을 해소했다. 일부러 늦은 시각 학원가를 배회하며 혼자 있는 아이를 노렸고, 그제서야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최근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착취 공판 결과가 나왔다. 재판부는 “피해자 중 한 명과 합의했고, 다른 피해자에게도 공탁을 했다”며 “피고들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행위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 5명에게 집행유예를, 1명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당초 검찰이 6명의 피고인에 대해 각각 구형한 징역 20년, 15년, 10년 등에 비해 터무니 없이 낮은 형량이었다.강원지역 34개 여성·인권단체는 곧장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으로 달려가 아동·청소년 성착취 사건에 대해 가벼운 판결을 선고한 재판부를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항의했다. 당시 피해자들은 초등학생으로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법은 만 13세 미만의 아동과 성관계를 가질 경우 상대방의 동의여부와 관계없이 범죄가 성립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거금의 공탁금, 초범, 합의 등을 이유로 용서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이들의 집행유예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행위와 다름 없었다.이제는 비단 가로등이 없는 골목길, 인적이 드문 밤을 피한다고 범죄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며칠 전만 해도 강원지역 내 한 온라인 카페에 ‘아이가 겁에 질려 밖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글이 게재됐다. 해가 중천인 시간, 유동인구가 많은 학교 인근에서 웬 노인이 아이를 쫓아왔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노인은 아이를 잡은 손을 거두지 않았고, 아이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도움을 구해야만 했다. 댓글에는 ‘그를 알고 있다’는 목격담이 연이어 담겼다. 노인은 동네에서 악명 높은 사람이었지만, 이전에도 지금도, 사회는 노인을 격리할 방도가 없었다. 그는 원래부터 ‘이상한 사람’이었고, 법은 생각보다 피해자를 우습게 생각하니까.우리 사회는 약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들이 법의 사각지대에 머물지 않고 안전한 내일을 꿈꿀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 잘못을 저지른 이에게 엄중한 잣대를 세울 필요가 있다. ‘법’은 약속이고, 타협할 수 없는 가치이며, 꼭 지켜야할 정신으로 존재할 때 비로소 제 기능을 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현재 사회가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관대하고 너그러운, 그리고 타인을 위하는 배려가 이제는 상처받은 자에게 향할 때가 되지 않았나. 더 이상 어리다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까닭으로, 장애인이라는 단어로 무시 당하며, 피해자들을 반복되는 피해의 굴레에 얽매이게 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또 돈으로, 술로, 의미 없는 반성문으로 누군가의 미래를 앗아가는 이가 허울좋은 정상참작, 선처의 이름으로 용서받는 사회가 사라지길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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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URL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87/0000990883?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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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1 0 5 2023.08.2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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